감시자들, 짜릿하지만 2% 아쉬운.
개봉한지 며칠 되지도 않은 <감시자들>이 극장가 관객을 휩쓸고 있다는 말에 엊그제 충동적으로 영화관에 갔다.
관객과 평론가들이 입 모아 잘 만들어진 스릴러물이라고 칭찬을 하니 여간 궁금한 게 아니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기대를 했던 탓인지 짜릿하지만 2% 아쉬움이 남는 영화였다.
2시간의 러닝타임은 길게 느껴지지 않았지만, 엔딩 크레딧이 채 올라가기도 전에 영화관을 빠져 나왔다.
영화 <감시자들>은 뛰어난 관찰력과 사고력을 갖고 첨단 기술을 활용해 범죄자들에 대한 감시를
전문으로 하는 경찰 내 특수조직 감시반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것으로, 일단 소재 자체는 구미를 당길 만큼 흥미롭다.
카리스마와 연륜으로 타겟을 쫓는 감시반 리더, 코드명 송골매의 ‘황반장’역은 설경구가,
'완전기억능력'을 가진 사람처럼 엄청난 기억력과 예리한 눈을 지닌 신참 ‘하윤주’역은 한효주가 맡았다.
영화는 분명 하윤주에게 초점을 맞춰 흘러가지만 뒤돌아서면 이 사람밖에 생각 안난다.
얼굴도, 단서도 남기지 않은채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는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 '그림자' 정우성이다.
20년만에 악역에 도전한다는 정우성은 <감시자들>에서 표정 변화나 대사가 거의 없었지만
냉철하면서도 살기 어린 눈빛, 칼 같이 내리꽂는 액션만으로도 묵직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감시자들>은 황반장, 하윤주와 함께 다람쥐, 독사 등 감시반 팀원들, 감시반을 서포트해주는 본부, 그리고 검거팀이
'그림자'처럼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제임스와 그 일당을 쫓고 감시하는 과정을 박진감 넘치게 보여준다.
각 캐릭터의 구구절절한 개인사는 과감히 생략하고 제임스과 감시반의 팽팽한 추적전에 집중했기에
관객들은 조였다, 풀었다 밀고 당기는 영화의 아슬아슬한 줄타기에 몸을 싣고 짜릿함을 맛볼 수 있었다.
본부와 감시반, 제임스 일당 각 두 그룹 안에서 펼쳐지는 팀워크를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신선한 소재, 깔끔하고 리듬감 있는 연출, 세 배우의 호흡 다 따져봤 때 영화는 분명 잘 만들어진 범죄스릴러 영화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몇몇 아쉬웠던 부분이 있었다. 스크린대신 카카오톡 창을 들여다 보게 만들었던 '뻔한 거' 말이다.
우선 이번 영화로 관객들과 평론가들 사이에서 새로운 모습을 발견했다며 호평을 듣고 있는 한효주는
특출난 관찰력을 가진 무시할 수 없는 신참 하윤주를 맡았다. 이는 분명 지금까지 그녀가 맡아왔던 배역과는 사뭇 다르다.
외모, 분위기, 말투, 그리고 가녀린 몸에서 내뿜는 에너지 넘치는 액션까지. 멋지다.
한 인터뷰를 보니, 원래 시나리오에서 '하윤주'는 발랄한 전형적인 신참 캐릭터였는데
한효주 스스로 연출진과 함께 지금의 '하윤주'를 만들어냈다고 한다.
<감시자들>에서 처음 등장하던 씬만 해도 온통 검은색으로 무장하고 차갑고 예리한 눈빛을 쏘길래
내가 알던 한효주와는 180도 다른 차갑고 이성적인, 타고난 감시자 캐릭터인 줄 알았는데
역할을 잊은채 감정에 치우치고, 황반장과 '개뻥'이라며 농담을 치고 웃을 땐 그냥 예능 '런닝맨'에서 보던 한효주 같았다.
이걸 두고 빈틈있는 캐릭터라 더 매력적으로 와 닿는다고들 하지만 난 뭐 그닥. 많이 봐왔던 여자캐릭터 아닌가.
20년만에 악역을 맡았다는 게 믿기지 않을만큼 '제임스'를 잘 소화해 정우성.
'그림자' 제임스는 정우성이 시나리오를 받고 바로 그 역할을 자처했을 정도로 매력적인 캐릭터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이게 또 뻔한게, 보통 영화에서 킬러같은 캐릭터는 자기 일을 그렇게 그만두고 싶어한다.
정우성도 마찬가지. 그가 새로운 인생 살려고 도망가다가 잡히는 게 아니라 더 큰 한 건을 위해
치밀한 계획을 짜고 감시반과 끝까지 대결했다면 어땠을까 싶다. 너무 허무하게 죽었어요! 피식 한번 날리고 죽었어..
그리고 중간중간 아무렇지 않게 펜으로 사람을 죽이는 걸 볼 때면,
그가 범죄조직의 두뇌인지 단순 사이코패스 킬러인지 모호하게 느껴졌다. 아..이 점을 봐도 너무 쉽게 잡혔어요!
황반장과 하윤주가 감시자의 역할에 대해 말다툼을 할 때 둘 사이를 뱅뱅 돌던 카메라 덕분에
먹던 팝콘도 내려놓고 멀미할 뻔 했다. 하윤주가 제임스를 놓치고 비오는 거리에서 땅을 치며 울부짖는데
동화처럼 비가 싹 개이고 햇빛 내리쬐며 제임스가 떡 하니 나타나던 장면,
황반장이 선로 위에서 제임스를 저격하려는 때에 쏜살같이 기차가 그의 뒤에서 질주하는데,
순간 <박하사탕>의 '나 돌아갈뤠!'가 생각나면서 집중력이 떨어졌고, 역시나 기적적으로 황반장 바로 뒤에서
기차는 방향을 틀었다. <감시자들>의 카메라 앵글은 주요 장면마다 다양한 걸 시도해서 더욱 스릴 넘치는 영화를
완성할 수 있었지만! 아 그 뱅뱅 돌아가던 건 너무 돌리더라구우..
<감시자들>의 하이라이트는 서울 곳곳에서 펼쳐진 리얼한 액션신이다.
어떻게 저기서, 그것도 대낮에, 저런 걸! 촬영했을까 싶었는데,
고층 빌딩들이 즐비한 강남 상권의 중심, 테헤란로를 통제하고 촬영한 오프닝 카체이싱은 실제 5톤 컨테이너 차량과
수 대의 경찰차를 동원함으로써 만들어진 아주 시원한 카스턴트 액션이었다. 그리고 제임스의 조직이 마지막 한 건에 실패하고
감시반을 피해 도주하는 하이라이트 추적 장면은 청계천, 서소문 고가, 황학동 시장 등 서울에서도
가장 붐비고 복잡한 공간에서 촬영했는데 거대한 스크린으로 보고 있자니 현실감 있으면서도 무지 아찔했다.
특히 고층 빌딩 주차장에서 일어난 자동차 폭파신은 생각보다 연기가 과하게 피어올라
그 빌딩 주위 소방차로 신고 전화가 빗발쳤다고 한다. <감시자들> 팀에게 사전 허가를 내준 관할 소방서만 빼고
명동 근처 소방서에서 약 20대의 소방차가 출동했다고. 리얼한 액션신 연출하려다 소방차 벌금을 물게 된 <감시자들>!
포스팅을 하면서 알게 됐는데 <감시자들>은 양가휘, 임달화 주연의 홍콩 영화<천공의 눈>을 리메이크한 작품이라고 한다.
영화 에필로그 부분에 감시반이 추적하는 인물로 임달화가 등장했을 땐, 뜬금없이 왠 임달화인가 했었는데,
원작에서 경찰 감시반 반장을 연기한 임달화가 출연하면 원작에 대한 예우로서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 였다고.
하지만 난 이제 임달화만 보면 얼마 전 가로수길에서 포즈잡고 사진찍던 까만 아저씨로밖에.../-/
이 에필로그 때문에 <감시자들> 속편이 나오는 거 아닌가하는 소리가 들리는데, 아직 확정된 것은 없다고 한다.
정우성도 그렇고, 제작진도 그렇고 속편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으니 기대해도 좋을듯?ㅎ
약간 아쉬운 부분은 있었지만 후텁지근한 요즘 날씨에 시원한 영화관에서 보면 좋을 쫄깃쫄깃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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